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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일상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고, 세계 경제를 장악했는가 2

by 일모소 2022. 12. 23.

달러는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이렇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힘센 돈이었을까요? 당시 달러는 지금처럼 그렇게 큰 힘을 가진 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수백 년간 국제 결제 수단으로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사실은 금이었는데요. 금을 국제 결제 수단으로 하고 있던 이때 전 세계가 완벽한 통화 체제라고 믿었던 이런 금본위제가 붕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 제1차 세계대전

그게 바로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역시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금을 보유한 만큼만 돈을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필요한 만큼 돈을 발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금태환을 중지하고 종이돈을 엄청나게 발행했던 것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사건만 봐도 전쟁 때 이렇게 무분별하게 돈을 찍어내다 보면 결국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과도하게 돈을 풀었기 때문에 각국의 통화량은 전쟁 전에 비해서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돈이 늘어난 결과로 전쟁 전에 유지되던 금과 화폐 간의 비율이 이제 깨져 있었다는 것이죠.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전쟁 중에 미국으로부터 많은 물자를 수입을 했는데 그 결제 대금을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금으로 지불을 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막대한 양의 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 간 갑니다. 그 덕에 미국은 제1 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에서 세계 최대의 금 보유국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1. 경제 대공황

한편 전쟁이 일어났던 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경기 침체가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했죠.  그래서 국가 간 무역 불균형이 점차 심화되고 이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습니다. 호황을 누리던 미국 역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피해가지는 못했고요. 이런 악재가 누적된 결과가 바로 1929년 대공황입니다.

출처: 한겨례 <대공황 당시 뉴욕 시립 급식소 앞에서 줄을 서 무료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약 25%로 네 명 중에 한 명은 일자리 잃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미국 전역에 있는 수만 개의 회사가 파산하고 9천 개 이상의 미국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약 15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1930년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 역사상 최악의 경기 침체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구글 <대공항 당시 일자리를 구하는 젊은이들>

 

 

2. 제2차 세계대전과 영국의 쇠퇴

이후에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내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유럽에서 1, 2차 세계대전이 모두 발발했기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 피해를 극복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최강대국이었던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전쟁 기간 동안 유럽에 많은 물자를 수출해 대공황을 극복하고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0년대 중반이 되면 미국이 전후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중심 국가로 명확하게 등장을 하게 되죠. 
19세기말이 되면 미국의 GDP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을 따라잡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서 철강 자동차 전기 등의 공업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그래서 20세기 초가 되면 미국이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로 부상을 하게 된 것이죠. 

 

당시에 영국이 전쟁으로 미국에 진 빚이 약 43억 달러 프랑스는 40억 달러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까지 합치면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이었죠. 영국은 현재 가치로 따지면 우리 돈으로 약 140조 원에 해당하는 전쟁 부채를 종전

60년 만인 2006년에 비로소 다 갚았다고 하니까요. 


 

3.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

이런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미국은 드디어 달러가 세계 통화 체제에서 국제 결제 수단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바로 그날이 찾아오게 됩니다. 제2차 대전 종전을 10개월여 앞두고 있었던 1944년 7월 1일에 미국 주도하에 44개국의 대표 730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미국 뉴햄프셔에 있는 브레튼 우즈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 당시 대공황을 불러일으켰던 여러 가지 문제를 막을 수 있는 국제 체제를 만들고자 했고 붕괴한 금본위제를 대신할 새로운 통화 체제가 마련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브레튼 우즈 체제라고 하는 것이다.

 

출처: 치킨요청님 블로그 <브레튼 우즈 체제>


이때 결정된 주요 내용은 총 다섯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첫 번째 미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를 만든다. 였습니다.  금본위제와 비슷하게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록 했지만 세계 각국 간의 결제는 금이 아니라 달러를 가지고 하도록 했다는 말이며, 그 달러를 미국으로 가지고 오면 금으로 교환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달러만 금으로 교환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당시에 금태환 다시 말해서 화폐를 금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나라는 사실상 미국 뿐이었습니다. 1947년 미국은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브레튼 우즈 체제 하에서는 달러가 국제 결제에 기준이 되는 화폐가 됐는데 기준이 되는 화폐를 기축통화라고 불렀습니다.

 

 

 

4. 마셜플랜

브레튼 우즈 체제가 합의되고 1년 뒤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통화기금 IMF도 창설됩니다. 사실은 새로운 국제통화체제가 탄생은 했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은 이런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산업시설이 파괴되면서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서 팔 능력이 없어진 것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마셜 플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1948년부터 약 4년 동안 서유럽 17개국에 약 130억 달러를 지원합니다. 식량 구입이나 공산품 구매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일부 금액은 문화예술과 관련한 분야를 통해서도 지원이 되었습니다. 

출처:짱신나님 블로그 <조지 마셜 미국 국무부 장관 연설 일부>



마셜 플랜으로 달러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들이 이루어져 그러면서 유럽의 전후 복구가 이루어지고 브레튼 우즈 체제라고 하는 새로운 질서가 점점 안정돼 가면서 전 세계 경제에도 호황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5. 달러의 위기

그러면 전 세계로 퍼져나간 달러의 힘은 갈수록 더 강해졌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이런 호황 속에서 무역 적자를 겪기 시작을 합니다. 달러의 확산은 미국의 적자를 통해서 얻어졌기 때문이죠. 국내뿐 아니라 국가 간 교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통화가 전 세계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달러의 공급은 미국이 무역에서 적자를 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 미국은 자기 금고에 가지고 있는 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달러를 찍어냈고, 이것이 이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을 합니다. 게다가 1960년대 이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서 달러의 발행량은 더욱 늘어나면서 금과 달러 간의 불균형이 점점 심화되기 시작을 했죠. 당연히 다른 나라들은 이러한 미국의 행보를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때 프랑스가 문제 제기를 합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 빚을 진 다음 그냥 달러를 찍어서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못 믿을 달러 발언으로 세계 다른 나라들이 가진 달러에 대한 믿음 역시 크게 흔들리게 되죠. 이런 딜레마 혹은 진퇴의 양란의 상황을 경제 용어로 써는 트리핀 딜레마라고 합니다.

국제 거래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이 기축 통화인 달러 공급을 늘리면 결국 달러 가치는 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떨어지게 되고 기축통화로서의 국제적인 신용도도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6. 닉슨 쇼크

국제사회가 고심 끝에 만든 새로운 국제통화 체제 하에서도 결국 허점이 드러난 셈이죠.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쏘아 올린 공의 파장은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요. 달러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달러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금을 사들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 결과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금이 유출되면서 미국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죠. 


달러의 신뢰가 떨어지고 프랑스 외의 다른 국가에서도 금태환을 요구하는 원성이 높아졌습니다. 진퇴양난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리차드 닉슨은 1971년 8월 15일에 금태환 중지를 기습적으로 발표를 하는데요. 이 소식을 들은 국제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이걸 닉슨 쇼크라고 부릅니다.

 

 

 

7. 진정한 기축통화로 자리 잡은 달러

닉슨 대통령의 발표 이후 여러 나라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달러 대신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실물 자산이다. 그래서 실물 자산인 금과 은을 사기 시작을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달러가 더 이상 기출 통화로서의 기능을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위기론이 이제 떠오르기 시작을 합니다. 그렇다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기는 어떤 역할을 가져왔을까요. 과연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 것은 미국만의 위기였을까요.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고 금값이 뛰는 건 국제 거래에 달러를 사용하던 다른 나라 경제에도 치명적이었습니다. 닉슨 쇼크로 달러와 금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다른 나라들이 보유한 달러까지도 결국에는 가치가 떨어진 것이죠. 또 하나 문제가 됐던 건 바로 브레튼 우즈 체제에 명시된 고정 환율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1달러와 같은 가치는 우리나라 원화 1천 원이라고 이렇게 정해놨던 것입니다. 그런데 1달러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원화만 환율을 1천 원으로 유지한다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게 되겠죠.

 

그래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1976년에 IMF 회원국들이 자메리카 킹스턴에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환율이 이제는 각국의 시장에 따라서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하자고 공식적으로 합의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변동 환율 제도입니다. 변동환율제가 결정되자 IMF 회원국들은 각 나라의 화폐 가치를 보이지 않는 손 혹은 자유시장에 맡기고, 금은 더 이상 국제 통화 시스템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변화를 계기로 달러가 비로소 온전한 기축통화의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제는 미국이 가진 경제력으로 막강한 지위를 그냥 갖게 된 것이죠. 즉 금과의 관계가 아니라 화폐의 가치만으로 진정한 기축 통화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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